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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철학의 거장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의 생애

비트겐슈타인은 20세기에 가장 영향력을 미친 오스트리아의 철학자입니다. 살아생전 그가 남긴 모든 메모들을 2017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기록되었다는 사실을 알고 나면 그가 얼마나 대단한지 굳이 부연 설명을 하지 않아도 될 것입니다.

그는 1889년 오스트리아 빈에서 5남 3녀 중 막내로 태어났습니다. 비트겐슈타인의 집안은 오스트리아의 철강 회사를 소유한 엄청난 부자였기 때문에 14세 때까지는 개인 가정교사를 초빙하여 교육을 받으며 유복한 환경에서 성장하며 지내왔습니다.  아버지의 뜻에 따라 공학도의 길을 걷고자 진학을 했고, 항공 공학을 전공하여 항공학 연구소에 들어갑니다. 그리고 공학 연구에 매진하던 중 좀 더 심도 있는 연구를 하고자 공학의 기본 원리인 수학을 공부하기 위해 러셀과 화이트 헤드가 쓴 수학원리 책을 접하게 됩니다. 수학원리 책은 수학의 원리가 논리학의 원리로 환원 가능하다는 전제 하에서 수학을 공리론적으로 재구성하고자 집필한 책으로 이 책에 매료된 비트겐슈타인은 케임브리지 대학의 러셀을 찾아갑니다. 그는 러셀에게 "내가 멍청하다면 나는 비행조종사가 될 것입니다. 그러나 내가 멍청하지 않다면 나는 철학자가 될 것입니다."라고 말하며 자신이 철학을 할만한 자질이 있는지 묻습니다. 러셀은 비트겐슈타인에게 철학적 주제에 대한 글을 써오게 했고 러셀은 그가 써온 글의 첫 문장만을 읽고서 "비행기 조종사가 되지 마라"라고 얘기를 합니다. 그리고 러셀은 그가 자신을 뛰어넘을 것이라고 예상했습니다. 그러고 난 후 비트겐슈타인은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1913년 논리학 문제를 연구하고 러셀과 토론하며  지내게 됩니다. 그가 특히 관심 가졌던 것은 모든 철학적 문제는 왜 발생하는가?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던 중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납니다. 그는 군면제 대상이었기 때문에 전쟁에 나가지 않아도 되었지만 자원입대하여 전쟁에 나가게 됩니다. 사실 그는 부유한 가정에서 자랐지만 우울증이 있었던 첫째 형과 셋째 형이 자살로 생을 마감하게 되고 그 역시 늘 죽음에 대한 공포와 자살 충동을 느끼며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전쟁은 그에게 있어 한 번쯤은 죽음과 정면으로 맞섰어야 하는 상황이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는 생사가 오가는 전쟁 속에서도 그의 논리철학을 계속해서 연구하며 자신의 생각을 써 내려간 메모들을 군장 속에 넣어 다녔습니다. 뿐만 아니라 전쟁이 끝날 무렵 이탈리아 포로수용소에 끌려가면서 까지도 진념과 신념으로 그의 논리철학적 사상을 정립하며 마침내 논리철학논고를 완성합니다. 그리고 이 논고를 집필 후 모든 철학 문제를 끝내었다고 말합니다.

전쟁이 끝나고 돌아왔을 때 그는 아버지가 물려준 막대한 유산이 있었지만 그에게 재산은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높은 산에 올라갈 때는 모든 짐을 내려놓고 출발해야 한다며 모든 유산을 형제들과 지인들에게 나눠줍니다. 그리고 모든 철학문제를 풀었기 때문에 더 이상 철학을 하지 않고 교사 자격증을 따서 시골 한 마을의 초등학교 교사로 근무하며 검소하게 지냅니다. 그 쯤 출판된 논리철학논고로 세상은 떠들썩 해집니다. 그의 책은 분석철학의 바이블이 되어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비트겐슈타인을 모시기 위한 러브콜을 여러 번 시도했지만 그는 모든 제안을 거부하고 은둔생활을 하며 지냅니다. 하지만 그는 시골에서 6년 간 초등학교 교사로 지내오며 겪은 그간의 경험 속에서 느낀 언어사용에 대한 또 다른 통찰과 우연히 직관주의 수학자 루이첸 브라우어의 강의에서 듣게 된 논리철학논고에 대한 비판을 계기로  자신의 철학적 사상에 오류가 있음을 인정하고 1929뇬 철학계로 다시 복귀하게 됩니다. 그의 복귀는 당시 최고의 경제학자 케인즈가 주변 지인들에게 "5시 15분 기차로 신이 도착했다"라고 말할 정도로 철학계의 천재 비트겐슈타인을 매우 기다려 왔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 후 그의 후기 철학이라고 할 수 있는 [철학적 탐구]가 완성되기까지 20년가 지속되었습니다. 그리고 1951년 62세가 되던 해에 비트겐슈타인은 전립선 암선고를 받게 됩니다. 그는 죽기 직전에 '사람들에게 내가 멋지게 살았노라고 전해달라'며 생을 마감합니다. 

 

비트겐슈타인의 전기 철학 논리철학논고

 

비트겐슈타인은 모든 철학적 문제는 언어가 왜곡되어 만들어진 가짜 문제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흔히 알 고 있는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는 진리를 추구하는 철학자들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진리를 추구하는 철학자들이 철학의 언어를 명료하게 하지 않음으로써 혼란을 야기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비유합니다. 꿀이 발라진 병 안에 파리들이 빠져나오지 못하는 것과 같이 철학자들이 자기들만의 언어유희에 빠져서 나오지 못하는 신세라고 말입니다. 파리를 탈출시키기 위해서는 병 안의 꿀을 없애야 하듯이 언어의 미사여구를 빼고 언어를 논리적으로 체계화시켜야 한다고 합니다. 그래야지 언어를 통해서 세계의 참모습을 볼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이러한 비트겐슈타인의 주장이 바로 그의 전기 철학의 핵심입니다. 여기에 두 가지 이론이 있습니다. 하나는 그림이론이고 하나는 진리함수 이론입니다. 

먼저 그림이론을 살펴보면 언어는 세계에 대한 그림이라는 주장입니다. 언어의 구조와 세계의 구조는 1:1로 동일하기 때문에 어떠한 대상을 언어로 말하는 것이 이해 가능하다고 보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대상에 대응하는 물질은 이름이 있습니다. 이를 테면 거울이라는 것이고 사각형이라는 것입니다. 이 대상들의 관계가 사태인데 여기서 사태는 네모난 액자가 액자가 됩니다. 이를 요소명제라고 하는데 논리철학논구에도 요소명제는 이름들로 이루어져 있으며 이름들의 연관 연쇄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 사태를 연결하면 사실이 되는데 이것에 대응하는 것이 바로 복합 명제가 되며 앞서 예를 든 것으로 말하면 내가 바라보고 있는 저것은 네모난 거울이고 바로 이것은 사실이 됩니다. 그리고 이 사실들이 모여 세계를 이루는 것이고 이 세계를 설명하기 위해 대응하는 것이 바로 언어라는 것입니다. 즉, 언어를 통해서 세계를 그림처럼 보여 줄 수 있다고 하여 그림이론이라고 합니다. 논리철학논고에서는 이를 두고 '세계는 사실들의 총체이지 사물들의 총체가 아니다'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진리함수이론은 하나의 명제에는 이것이 진리명제인지 혹은 거짓명제인지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세계는 사실들의 총체이기 때문에 사실은 사태들의 진리함수여야 하고 진리명제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논리철학논고의 마지막에 이러한 문구가 나옵니다. "말할 수 없는 문장에 대해서는 침묵해야 한다." 세계의 사태를 언어적으로 잘 묘사할 수 없을 때는 그 진리를 말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존재'와 '행복', '사랑'과 같은 명제는 그림으로 보여줄 수 없기에 사고될 수 없고 이것에는 한계가 있음으로 무의미한 것이라고 보았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중요하지 않으며 통찰되지 않아야 한다고는 하지 않았습니다. 실제로 논리철학논고를 잘못 이해한 비엔나 서클의 모리츠 큐리크가 비트겐슈타인을 초청해 논리실증주의자들에게 비과학적인 명제들을 버려야 한다는 그들의 주장에 힘을 싣는 세미나를 부탁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타고르의 시를 읽어주는 모습을 보이며 과학만을 중요시 여기는 논리실증주의자들에게 비과학적 영역을 배제해야 한다는 그들의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결국 "말할 수 없는 문장에 대해서는 침묵해야 한다"는 말은 철학적 문제에 대한 언어의 한계가 말을 통해 표현할 수 없는 세계의 한계라고 표현한 형의상학적인 주장이 아니었을까 생각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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