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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그리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

아리스토텔레스의 생애와 업적

아리스토텔레스는 기원전 384년에 아테네의 북쪽에 위치한 스타게이라 라는 작은 도시에서 태어났습니다. 스타게이라 도시는 지리적 특성상 페르시아가 침략했을 때 피해를 거의 입지 않았을뿐더러 펠로폰네소스 전쟁에서도 중립적인 입장을 표명하며 어느 한 도시에 편향되지 않았기 때문에 큰 특색 없는 변방의 작은 도시에 불과했습니다. 오늘날 지방 출신을 업신여기는 것과 같이 스타게이라 라는 출생 배경은 그 당시 아리스토텔레스에게 꼬리표 같은 것이었습니다.

그럼에도 아리스토텔레스의 아버지는 마케도니아 왕국의 왕의 주치의로 지냈기 때문에 자식인 아리스토텔레스 역시 왕국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을 거라 추정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훗날 왕자들과 궁정에 대한 혐오감을 표현했다는 것을 보면 그렇게 만족스러운 생활은 아니었지 않았나 추측해 봅니다.. 그래도 이 시기 함께 한 아버지의 영향으로 훗날 생물학과 의학적 학문에 많은 관심을 가질 수 있었고 이를 통해 철학사상과 더불어 다양한 업적을 내놓을 수 있었을 겁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아리스토텔레스가 14세가 되던 해에 아버지가 일찍 사망하게 됩니다. 아버지가 사망한 후 프로크세노스라는 후견인의 도움으로 17세가 되던 해 그는 아카데미아에 입학을 하게 됩니다. 오늘날 서양 철학의 양대 산맥이라 불리는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가 탄생하게 된 시점이 아마도 이때부터라고 할 수 있겠네요.

아리스토텔레스는 아카데미아에서 10년 동안 공부를 하고, 10년 동안 가르치며 20년 간 아카데미아에서 자신만의 철학적 학문을 쌓으며 플라톤의 후계자로 많은 이들에게 존경과 사랑을 받습니다. 그러나 플라톤이 죽음을 맞이한 후 그의 조카인 시퓨시포스가 아카데미아의 교장으로 역임하면서 아리스토텔레스는 아테네를 떠납니다. 그는 레스보스 섬에 들어가 3년 동안 생물을 연구하며 방대한 양의 생물학적 지식과 정보를 이론화하며 <동물지>라는 책을 남깁니다. 그 양이 얼마나 방대했는지 기원전 322년 아리스토텔레스가 사망하고 난 뒤 19세기 찰스 다윈이 등장할 때까지 그가 연구한 생물종들의 기록이 가장 많았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이는 훗날 우리가 알고 있는 생물학의 기초가 됩니다.

기원전 342342년부터 기원전 340년까지는 마케도니아의 왕자 알렉산드로 대왕의 스승으로 삶을 살아갑니다.. 아마도 이 시기에 그의 정치 철학적 이론이 정립되었을 거라 여겨집니다. 알렉산드로 대왕은 아리스토텔레스가 준 <일리아스> 서적을 늘 간직할 만큼 스승을 존경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플루타코스의 영웅전에 보면 "알렌산드로 대왕은 비록 생명은 아버지로부터 받았으나 생활의 슬기는 아리스토텔레스에게서 배웠다고 말했다."라고 적혀있을 정도니 말입니다.

그가 아테네를 떠난 지 13년이 지나고 난 뒤에야 아리스토텔레스는 아테네로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여전히 아카데미아가 존재했지만 리케이온이라는 자신만의 학교를 세워 이곳에서 제자를 양성합니다. 리케이온에서는 생물학과 자연철학을 강조하며 실존적인 철학에 대해 탐구했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우리에게 알려진 아리스토텔레스의 많은 집필들이 이곳에서 탄생하게 됩니다. 특히 플라톤 때까지만 해도 책의 구성이 시와 희곡형식으로 되어 있었다면 아리스토텔레스의 저작을 보면 서론, 본론, 결론으로 이끄는 우리가 흔히 아는 논문형식의 글로 집필되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강의를 하기 위해서 최초로 산문형식의 글로 작성된 것입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리케이온에서 12년 동안 강의와 학문을 연구하며 최초로 학술 분야를 체계적으로 구분하기도 했습니다. 오늘날의 물리학과 화학은 자연학이라는 책을 통해 운동과 변화를 설명하려는 시도에서 시작된 것이며 영혼론이라는 책을 통해서는 우리 정신과 외부세계의 관심을 통해 심리학과 인지과학을 분리시켰습니다. 이뿐만 아니라 정치철학, 윤리학, 논리학, 형이사학 등 각기 다른 독자적인 학술 영역을 체계적으로 분리했는데 오늘날 우리가 대학교에서 학과를 선택할 수 있게 된 시초라고 말할 수 있겠네요. 이렇게 제자들이 연구하고 탐구한 학문들의 책들은 한 곳에 모아두고 빌려 보는 최초의 도서관도 이때 처음으로 등장하게 됩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시대는 기원전 323년 알렉사드로 대왕이 사망하자 마케도니아는 몰락하고 아테네인 들은 독립을 맞이하면서 저물게 됩니다. 아테네인 들의 사이에서 일어난 반 마케도니아의 분위기는 소크라테스 때처럼 아리스토텔레스 역시 고소를 당하며 재판을 받는 입장에 처하게 됩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신변의 위험을 느끼고 망명을 선택하며 에어보이아의 칼키스라는 곳으로 몸을 숨긴 뒤 얼마 지나지 않아 사망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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