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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철학자 피타고라스

피타고라스의 영혼과 사상

개인의 선택과 그 선택에 대한 책임은 당연한 것이었을까? 피타고라스(기원전 약 570년-기원전 약 496년)는 그리스 사모스 섬에서 태어났습니다. 당시 사모스 섬을 지배하던 참주 폴리크라테스와의 정치적 갈등으로 약 40세쯤 남부 이탈리아 크로톤으로 이주하게 됩니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피타고라스는 '피타고라스의 정의'로 알고 있는 바로 수학자 피타고라스입니다. 이 세상에는 질서와 규칙이 있고 이것을 숫자로 바라보며 수학계에 커다란 업적을 남긴 인물이죠. 그러나 한 번도 우리는 피타고라스를 철학자로서 제대로 만나본 적은 없는 것 같습니다. 철학자 피타고라스의 사상이 우리 삶에 얼마큼 깊숙이 들어와 있는지 알고 나면 피타고라스가 수학자가 아닌 철학자로 새롭게 다가오게 될 것입니다.

피타고라스의 사상을 알기 전에 먼저 생각해 보고 가야 할 질문이 있습니다. 바로 영혼에 대한 질문입니다. 영혼에 대한 입장은 세 개 정도가 있습니다. 첫 번째는 영혼이란 애초에 없고, 오직 두뇌를 포함한 신체 활동의 결과만 있다는 것이고, 두 번째는 영혼을 단지 어떤 마음으로 볼 때 두뇌 활동의 결과로 생겨 난 것이며 두뇌 활동이 멈추면 영혼이라고 불리는 현상도 사라진다는 입장입니다. 세 번째는 영혼은 각 개인으로 존재할 수 있다는 입장입니다. 누구든 이 세 가지 입장 중에 하나를 지지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 글을 읽고 계신 독자분들은 어떤 입장을 지지하시나요?

피타고라스의 경우에는 바로 위의 세 가지 입장중에서 세 번째 입장을 최초이자 공식적으로 표명한 철학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는 자신을 중심으로 이러한 입장을 대변한 피타고라스 학파를 만들어서 각 개인마다 영혼이 있다는 것을 표명했습니다. 

피타고라스가 말하는 영혼은 어떤 다른 세계에서 자유롭게 살던 존재가 죄를 짓게 되어 육체에 갇혀 벌을 받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영혼이 다시 육체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영혼을 깨끗하게 하는 정화 활동의 필요성을 강조했습니다. 정화 활동의 예로는 금욕, 학술활동, 음악, 체조 등이 있는데 이러한 활동을 해야지만 영혼이 다시 자유로워질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이러한 피타고라스의 영혼에 대한 입장은 중요한 의의를 가지고 있습니다. 고대 그리스인들의 사고방식에 가장 먼저 영향을 미친 호메로스(기원전 약 800년-기원전 약 700년)라는 인물이 있었습니다. 그의 저서  <일리아드>와 <오디세이>라는 서사집은 당시 그리스인들을 하나의 언어를 사용하는 하나의 공동체로 묶어주는 역할을 했는데 이 두 서사집 중에서 <일리아드>에 등장하는 '헥토르'와 '아킬레우스' 등의 인물에서 특이점이 발견됩니다. 그것은 인물들이 무언가를 스스로 선택하고 책임지는 '자아'라는 개념이 등장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다음은 <일리아드>의 한 구절로 '아가맴논'이 '아킬레우스'가 점령한 도시에서 데려온 브리세이스라는 여인을 뺏은 뒤 자신의 입장을 대변한 대사입니다.

나는 아닙니다. 내가 이런 짓을 한 탓은 나에게 있지 않고, 제우스와 나의 운명과 어둠 속을 헤매는 에리뉘스(Erinys, 복수의 여신)에게 있습니다.
내가 아킬레우스에게서 명예의
선물을 손수 빼앗던 바로 그날, 바로 그들이 회의장에서 내 마음속에 사나운 아테(ate, 어리석음/망상)를 보냈기 때문이지요.
신이 모든 일을 이루어 놓으셨는데 나라고 어쩔 수 있겠습니까?
(일리아드 18:86)

여기에서 알 수 있듯이 호메로스의 세계관에서 행위를 스스로 선택하고 책임지는 자아는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단지, 자유를 뜻하는 Eleuthria는 자신의 고향에서 쫓겨나지 않고 살 수 있는 자유를 의미했을 뿐 한 개인의 자유를 의미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이 말인즉슨 자아와 자유보다 필연(Anake)과 운명(Moria)이 더 강한 힘을 발휘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러한 시대적 상황 속에서 피타고라스의 영혼에 대한 입장과 그의 사상은 각자가 행위의 주인이고, 행위의 책임자라는 인간에 대한 새로운 이해의 가능성을 열어준 것입니다. 

각자에게 영혼이 있다는 믿음은 인간이 살면서 지은 죄를 사후세계에서 각자의 영혼이 책임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살면서 지은 죄를 다른 누군가가 대신 책임져 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오직 나만이 책임질 수밖에 없다는 생각을 만들어 낼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일상 생활에서 받아 드리고 있는 행위를 스스로 선택하고 책임지는 자아가 바로 피타고라스의 영혼 사상과 함께 자리잡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이 사상을 뒷받침하기 위해 영혼이 존재한다는 것을 증명한 자료는 남아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피타고라스의 사상은 후배 철학자 플라톤에게서 더 발전된 사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플라톤의 저서 <파이돈>에서는 소크라테스를 주인공으로 한 영혼이 실제로 존재 한다는 증명을 시도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제 우리가 알고 있는 피타고라스는 수학에서 뿐만 아니라 인간의 삶에 있어서도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점을 보면 철학의 발전은 과학의 발전처럼 눈에 쉽께 띄진 않지만 이미 우리 일상에 깊숙히 들어와 자리잡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죠. 우리가 현재 당연시 여기고 있는 내가 선택한 행위와 그것에 대한 책임은 사실 당연한 것이 아니였던 것처럼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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