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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이상학의 창시사 파르메니데스
형이상학이란 인간의 주관적 심리나 감각을 배제하고 논리적인 사유만으로 세계를 탐구하려는 학문을 말합니다. 형이상학의 탐구는 현실에서 써먹기에는 복잡하고 어려운 철학의 분야라고 할 수 있지만 세계의 탐구와 인간의 자아 성찰에 있어서 꼭 필요한 학문입니다. 형이상학의 분과로는 다양하게 있습니다. 그러나 대체로 형이상학적이다 라는 말은 존재론적이다라는 말로 풀어내기도 합니다. 무언가 없지 않고 있는 것에 대해 존재 자체를 탐구하는 학문이 바로 형이상학 중에서도 존재론과 인식론에 해당합니다. 실제로 존재하는 것만을 사유할 수 있으며 존재하지 않는 것은 사유할 수 없다고 보는 학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형이상학이 자리 잡은 명제가 있습니다. 바로 기원전 5세 고대 그리스의 파르메니데스는 '있는 것은 있고, 없는 것은 없다'라는 명제를 내세웁니다. 그는 세상의 그 어떤 것도 변하지 않는다고 주장을 한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형이상학을 알기 위해서는 파르메니데스를 먼저 알고 가야하는 이유입니다.
파르메니데스 vs 헤라클레이토스
많은 철학자들은 파르메니데스와 반대의 입장을 말한 헤라클레이토스를 라이벌 구도로 바라봅니다. 헤라클레이토스는 파르메니데스와 달리 만물은 고정적이지 않고 계속 변화하며, 세상의 모든 것들은 변하지 않는 것이 없다라고 주장합니다. 만물은 변화지 않고 오로지 고정되어 있어 운동과 변화가 없음을 주장한 파르메니데스와 확연히 다른 주장이죠? 데모크레이토스는 파르메니데스가 말한 있는 것은 원자이며, 없는 것은 빈 공간으로 바라보았습니다. 이러한 단위매개체에서 헤라클레이토스의 원자론이 탄생됩니다. 하지만 파르메니데스가 주장하는 '있는 것은 있고, 없는 것은 없다'라는 말은 곧 '있는 것만 있다'라는 말로 요약해 볼 수 있으며 '있는 것만 있다'라는 말은 이 '있는 것'이 바로 오로지 '하나밖에 없다'라는 결론을 내릴 수 있습니다. 파르메니데스의 주장은 이러합니다. 있는 것만 있고 없는 것은 없기 때문에 있는 것들 사이에 구분해 주는 빈 공간 역시 없는 것이어야 하므로 있는 것은 나누어지지 않는 단 하나만 있어야 한다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것을 일자라고 표현합니다. 그리고 이 일자는 헤라클레이토스와 정반대의 의견으로 운동도 변화도 없는 것입니다. 있지 않는 것은 없다라는 하나의 명제로 있는 것의 성질들을 논리로만 추론해 가는 것 이게 바로 앞 서 말한 형이상학의 출발인 것입니다.
감각은 착각이다.
세상 사람들은 자꾸만 세상을 변하는 것으로 인식합니다. 하지만 파르메니데스의 주장에 따르면 사실 세상은 변하는 것이 아니라 영원히 존재하는 일자일 뿐입니다. 세상이 변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다 허상이라는 겁니다. 그러면 왜 세상 사람들은 변한다고 느끼느냐는 겁니다. 그것은 사람들은 자신의 감각을 믿기 때문이라고 설명합니다. 감각으로 인식한 세상은 끊임없이 변하고 운동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즉 우리가 운동하고 변화한다는 것은 감각을 통해 그것을 경험했다고 생각했기 때문인 것이죠. 그래서 파르메니데스는 '네 감각을 믿지마라, 감각은 착각이다'라고 말합니다. 자, 나라는 존재를 한 번 생각해 봅시다. 의 과거는 이미 지나갔으며 미래는 아직 오지 않았습니다. 단지 나는 지금 현재만을 감각적으로 생생하게 경험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과거의 나와 지금의 나가 다르다는 것과 지금의 나와 미래의 내가 다를 거라는 것은 착각이라는 것입니다. 과거, 현재, 미래는 하나의 시간 속에서 다 같은 것이기 때문에 나라는 존재는 오로지 존재하는 것에 국한 된 것이지 변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조금 어려울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생각은 후의 철학자와 과학자들에게도 전해집니다.
플라톤도 파르메니데스와 같이 '네 감각을 믿지마라, 감각은 착가이다'라는 똑같은 말을 남기며 관념의 세계를 믿고 관념의 세계를 믿기 위해 기하학을 말했습니다.
아이슈타인도 과거, 현재, 미래의 구분은 착각일 뿐이라고 말하며 그의 결정주의는 세계가 고정된 체계 이며 그 안에서 일어난 변화는 인간의 환상에 불과하다는 이론을 보입니다. 그래서 오스트리아의 과학 철학자 칼 포퍼는 아이슈타인을 가리켜 파르메니데스주의자라고 말하기도 했다죠.
결국 파르메니데스가 감각을 믿지 말라는 이야기는 이성을 통해 참된 진리를 추구하라는 것입니다. 참된 진리란 변하지 않고 항상 그 자리에 있는 것이 진리입니다. 진리를 위해서 최초로 있다는 것과 없다는 것을 논리적 극단까지 말고 나가며 단 하나의 것을 증명하고자 했습니다. 그것은 단 하나의 존재에 관한 것입니다. 참된 존재는 이성을 통해 눈에 보이지 않는 본질을 파악하고 끊임없이 변화하는 감각의 세계에서 자기 중심을 잡으며 삶의 자세를 견제하며 사유의 힘을 기르라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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